
차 버리고 뜬 뚜벅이의 선택
명절이나 연휴만 되면 고속도로에서 버려지는 시간 때문에 벌써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운전대 잡고 서다 가다를 반복하며 스트레스받느니 차라리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움직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군요. 동서울터미널의 예스러운 풍경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버스표를 끊었습니다. 5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장거리 노선이라 우등을 예매할까 고민하다가 조금 더 보태서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선택했어요.




티머니고 앱을 켜서 조회를 해보니까 편도 기준 1인당 33,200원 나오더라고요. 같은 구간 우등버스 가격이 25,600원이었으니 딱 7,600원 차이였습니다.
평일인 월요일부터 목요일 사이에 이용하면 15% 정도 주중 할인이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주말이나 명절이라 정가를 다 냈지만 이 금액 차이라면 충분히 투자해 볼 만하다고 느꼈지요.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예매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모바일 승차권 QR코드만 단말기에 찍고 바로 들어갔습니다.
21석의 넓은 공간과 명당
버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일반 우등버스와는 확연히 다른 실내 분위기에 감탄이 절저로 나왔어요. 28명이 타는 우등과 달리 총 21석으로만 배열되어 있어서 좌석 사이 간격이나 통로가 널찍했습니다. 꼭 비행기 프레스티지석에 탑승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차량 내부를 보면 좌측에는 1인석이 쭉 나열되어 있고 우측에는 2인석이 배치된 형태입니다.

혼자 이동하는 길이라면 무조건 좌측 1인석을 고르는 게 답입니다. 2인석 사이에도 가림막 커튼이 있어서 옆 사람과 공간 분리는 되지만, 통로 쪽 좌석은 외부에 커튼이 없어서 지나다니는 사람 시선이 살짝 신경 쓰일 수 있거든요. 1인석은 개별 커튼을 가볍게 치기만 하면 나만의 사적인 아지트가 완성됩니다. 차멀미가 살짝 있는 편이라 너무 뒤쪽은 피하고 휠하우스 영향을 적게 받는 가운데 라인인 10번 좌석을 골랐는데 승차감이 아주 안정적이었어요. 보통 4번부터 12번 사이를 명당으로 꼽는 이유를 앉아보니 바로 알겠더군요.
뒤 눈치 안 보고 눕는 좌석
제가 이번에 타고 가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좌석 시트 그 자체였습니다. 버스 타고 갈 때 제일 난감한 순간이 바로 등받이 뒤로 넘길 때잖아요. 뒷사람 무릎에 걸릴까 봐 눈치 보이고 신경 쓰이기 마련인데, 이건 좌석 전체가 하나의 부스 구조처럼 감싸져 있습니다. 등받이를 아무리 뒤로 넘겨도 뒷사람 공간을 전혀 침범하지 않더라고요.

오른쪽에 위치한 시트 조절 버튼을 누르면 등받이와 다리 받침대가 매끄럽게 움직입니다. 체감상 160도에서 170도 가까이 스르륵 눕혀지는데 거의 침대에 누워서 가는 느낌이었어요.

키가 큰 편이라 보통 버스나 KTX에 타면 무릎이 앞좌석에 닿아서 고생하곤 했는데, 다리를 끝까지 뻗어도 공간이 넉넉해서 감격스러웠습니다. 내릴 때는 위에 있는 오토 리셋 버튼 하나만 누르면 원래 상태로 원위치되니까 하나씩 조작할 필요가 없어 은근히 편하더라고요.
미러링과 소소한 편의 기능
좌석 앞쪽에는 개별 모니터가 깔끔하게 매립되어 있습니다. 운행 정보나 라디오, 폰 미러링, 멀티미디어 같은 다양한 메뉴들이 화면에 떠 있더라고요. 스마트폰 미러링을 켜서 휴대폰과 연결해 봤는데 반응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습니다.









근데 약간 예상과 달랐던 점이 하나 있었어요. OTT 앱마다 보안 정책이 다른 건지 웨이브는 화면 출력이 끊김 없이 잘 나왔는데 넷플릭스는 재생이 안 되더라고요. 영상 보면서 가실 분들은 이 점을 미리 알아두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무선 충전 패드도 마련되어 있어서 스마트폰을 올려두니 고속 충전이 잘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제가 탔던 차는 무선 충전이 잘 작동했는데, 돌아올 때 탔던 다른 차는 무선 충전 패드가 먹통이라 USB 포트에 선을 꽂아 충전해야 했어요. 차량 관리 상태나 연식에 따라 편의 기능 작동 여부가 조금씩 다를 수 있겠더라고요. 좌석 옆에 달린 간이 테이블은 소지품이나 간식을 올려두기 좋았지만, 거울 위치는 각도가 조금 애매해서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지라 거의 안 쓰게 되었지요.
모니터 하단 메뉴를 터치해 보니 화장실이나 응급 상황을 기사님께 전달할 수 있는 요청하기 버튼도 보였습니다. 장거리 운행 중에 갑자기 배가 아프거나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 휴게소 들러 달라고 직접 말하기 쑥스러울 수 있는데, 참 세심하게 배려한 기능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차라리 일찍 탈걸 그랬네요
사실 대중교통으로 3시간 이상 장거리를 달려가다 보면 노면에서 올라오는 진동이나 흔들림을 아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고급 차량이라도 버스 특유의 둔탁한 충격은 중간중간 느껴지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렸을 때 체감되는 피로도는 우등버스나 일반 전세버스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벼웠습니다. 허리 통증이나 다리 쏠림 없이 푹 자면서 이동했더니 휴게소를 거쳐 도착했는데도 몸이 멀쩡하더라고요. 7,600원을 더 낸 가치는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이번 명절에도 와이프와 함께 시골 내려갈 때 망설임 없이 프리미엄 버스로 예매를 마쳤어요.

가족들과 다 함께 단체로 이동하거나 기업 임원진 오가는 일정에는 전세버스 대여업체를 통해 11인승이나 21인승 VIP 리무진 관광버스를 대절하는 것도 견적을 비교해 보면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혼자나 둘이서 이동하는 뚜벅이 여행객에게는 이만한 가성비 이동 수단이 없지 않나 싶네요. 장거리 지방 이동이 많거나 이동 시간 동안 다른 사람 간섭 없이 편안하게 수면을 취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선택이 될 겁니다. 다만 1시간 내외의 짧은 거리를 가거나 경비를 최대한 아껴야 하는 상황이라면 굳이 이 등급까지 고집하지 않고 일반 버스를 이용해도 충분합니다.
도로 위에서 버려지는 시간을 편안한 휴식 시간으로 바꿔준 덕분에 장거리 지방 출장이나 명절 고향길이 한결 가볍게 느껴집니다. 다음번 지방 내려갈 때는 노트북을 가져가서 테이블에 올려두고 간단한 작업도 시도해 봐야겠습니다.